여름의 끝자락에서 인사 드렸던 것 같은데, 벌써 한 해의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네요. 에디터 고니입니다 :)
언제나 끝은 아쉬운 것 같아요. 처음 시작할 땐 왜 인지 모르게 여러 고민들이 따라왔던 것 같은데, 막상 끝 매듭을 지으려고 하니 ‘그냥 다시 풀어버릴까?’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. 그만큼 애정이 많이 가는 한 해였던 것 같아요.
살갗에 스치는 바람이 제법 쓰라린 요즘입니다. 얼마 전에는 조금이지만 첫 눈이 내리기도 했는데요.
‘첫 눈’
누군가에게는 그저 기상 현상에 불과하겠지만,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 때문인지 제게 첫 눈은 늘 기억에 남는 순간들 중 하나입니다. 매년 첫 눈을 맞은 순간을 상기하곤 해요. 그러한 기억들이 모여 추운 겨울에도 따뜻함을 잃지 않고 버텨 나가지 않나 싶습니다.
님은 평소 좋아하는 겨울의 순간이 있으신가요?
저는 눈이 오는 새벽, 창 밖을 바라보는 일을 좋아합니다. 낮아진 온도, 새하얀 거리의 고요함에서 오는 낯선 기운들이 항상 들떠 있는 제 마음을 가라앉혀주거든요. 그래서 1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‘대설’을 맞이한다는 게 더 설레는 것 같습니다.
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괜히 사람들 사이에 오고가는 따뜻한 온기들이 더 그리워지는 것 같아요. 올해에는 어느 계절이 와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길 바랬는데, 속절없이 내리는 눈에 잊혀졌던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. 쌓여가는 눈덩이 속 도무지 쉽게 잊을 수 없는 것들을 떠올리는 영화 <윤희에게>입니다.
출처 : 리틀빅픽처스
출처 : 리틀빅픽처스
“윤희에게”
입김인지, 담배 연기인지 모를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겨울. 윤희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합니다. 하지만 편지는 윤희에게 전달되지 못하고, ‘윤희’(김희애)의 딸 ‘새봄’(김소혜)의 손에 먼저 읽혀집니다. 새봄은 애틋함과 그리움이 묻은 편지를 통해 엄마의 어린 시절 추억을 엿보게 되는데, 이에 새봄은 편지의 발신인과 엄마 윤희가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 일본의 오타루로 여행을 계획합니다.
출처 : 리틀빅픽처스
“나는 가끔 네 꿈을 꾸게 되는 날이면 너에게 편지를 쓰곤 했어”
-쥰-
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벅찬 윤희. 윤희가 한 숨을 돌릴 만한 것은 그저 퇴근길에 한숨과 함께 뱉어내는 담배 연기뿐 고입니다. 그러던 어느 날 윤희는 익숙한 이름으로부터 발송된 편지를 발견합니다.편지를 읽은 윤희는 싱숭생숭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다니던 공장 급식소도 그만둔 채 딸 새봄과 오타루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.
오전에는 개인 시간을 갖자던 새봄은 편지 속 주소를 찾아가 쥰의 고모가 운영하는 카페 앞을 서성이곤 합니다. 한편 윤희 또한, 조용히 숙소에서 나와 편지에 적힌 쥰의 집으로 향하죠. 멀리서나마 쥰의 모습을 본 윤희는 급히 몸을 숨기고 숙소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눈물을 흘립니다. 윤희에게는 쥰을 맞이할 용기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.
출처 : 리틀빅픽처스
이러한 윤희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, 새봄은 쥰의 고모의 카페를 찾아가 내일 아침 쥰과 만날 수 있게 말을 전해달라고 합니다. 결국 쥰을 만난 새봄은 쥰에게 저녁을 먹자고 거짓 약속을 잡으며 윤희 역시 그 약속 장소로 불러 두 사람의 재회를 돕습니다.
출처 : 리틀빅픽처스
“윤희니?”
20년의 세월이 무색한듯, 한 눈에 서로를 알아보는 두 사람. 서로를 기억하지 않으려 애쓰던 순간들 조차 새어나오던 그 마음들은 한 겨울 속절없이 내리는 눈처럼 한 없이 쌓이게 됩니다. 아무리 치우려해도 쌓여가는 마음을 마주보는 일은 버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. 서로를 마주보았을 때 가장 매서웠고 차가운 세상의 시선을 견뎌야 했으니까요.
출처 : 리틀빅픽처스
“눈이 언제쯤 그치려나…”
-쥰-
언제부터 쌓였을 지 모르는 그 마음을 가늠할 수 있을까요? 우리는 결국 추억에 너무 약해 사랑하는 것들을 쉽게 잊고 살 수 없죠. 사랑에 종결은 없는 것 같습니다. 지금 당장 눈이 그쳐도, 내년 이맘 때 또 다시 눈은 내리기 마련이니까요. 결국 우리는 돌아오는 이 계절에 또 누군가를 떠올리며 우리의 약한 마음을 탓하겟죠. 항상 좋은 향기가 났던 그 사람을 애써 치우려고 하기 보다는 그 때의 향기를 기억해 보는 것도 매서운 겨울 바람을 이겨내기에 좋은 난로가 되어줄 것 같습니다.